1회 둔저제(단편)에 참가하면서 써본 짤막한 단편
단편이라곤 해도 굉장히 짧은 수준으로서 설명을 최대한 안하고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내용을 가지고 써본 것이다.
도깨비는 메밀묵을 좋아하고 팥죽을 싫어한다.
낯도깨비는 낯에 돌아댕기고 밤에 잔다.
요 두줄 가지고 사실상 참가에 의의를 두고 써본 단편인 셈.
이하 소설
0. 남자
드문드문 고장이 난 가로등만이 서있는 스산한 골목길. 한 남자가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늦은 밤의 스산함에 공포를 느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까. 남자의 걸음은 그 속도와 어울리지 않게 매우 신중한 걸음걸이였다.
그런데 어둠 속 에서 남자의 뒤를 따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림자라고 하기엔 너무 멀고 사람이라고 하기엔 형체가 불분명 하다. 게다가 그 형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남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남자는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갑자기 멈춰 선다.
그리고 그 검은 형체도 멈춰 선다.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려 놨어?]
거의 바로라고 할 만큼 답장이 온다.
[낮에 일을 시키라고! 낮에!! \ /
그려놨으니까 빨리 오기나 해.]
남자는 문자를 확인한 후에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아까보다는 한결 느려졌다. 남자가 움직이자 검은 형체도 뒤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 까. 골목길 바닥 한가운데 뭔가 희끗한 것이 보인다. 남자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바닥에 그려진 것은 다름 아닌 원. 흰색 가루 같은 것으로 깔끔하게 그려진 원의 모습이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원의 가장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원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당연히 검은 형체도 원을 따라 걷게 된다.
순간 남자는 걷는 속도를 올린다. 분명 걷는 모습인데 마치 전력질주라도 하는 것 같은 속도. 원을 따라 걷다 보니 남자가 검은 형체의 뒤를 쫓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남자가 손을 뻗으며 외친다.
“잡았다.”
검은 형체는 남자의 거친 손에 이끌려 그만 원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검은 형체는 우어억 하는 괴성을 질렀다. 그리곤 마치 종이가 물에 젖듯이 하얀 가루로 빨려 들어간다.
검은 형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작은 꼬마 한명이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연다.
“몽달 하나 잡는데 뭐 그리 신중해.”
“신중해서 나쁠 거 있냐.”
“아무튼 잡았으니까 빨리 뜨자. 근처에 까비 냄새가 진동을 하네. 최소한 다섯 이상은 사는 거 같은데.”
“도깨비?”
남자가 눈을 번뜩인다. 그것은 호기심.
“까비 봐서 뭐하게. 궁금해 하지 마라.”
“조사해봐서 나쁠 것 없지.”
“그럼 낮에 하자고 낮에! 밤엔 자야지 이 올빼미 같은 놈아!!”
꼬마의 폭언에 남자는 오늘밤 두 번째로 웃는다.
1. 소년
낡은 백열전구가 지지직거리는 방.
낡기도 낡았지만 잡동사니가 가득한 방이다. 게다가 좁기까지 한 방이다. 그런데 이 좁은 방에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한쪽 구석엔 정말 나이를 짐작 할 수 없이 늙은 노인이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어두운 방인데 고글을 쓰고 있는 여자, 2미터는 됨직한 커다란 덩치의 남자. 난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작고 빼빼 마른 남자.
그리고 한 소년이 있었다.
좁은 방 안에서 말을 주로 하는 것은 소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야단을 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자는 거야? 요즘 너무 게을러졌어. 그렇게 잠만 자면 어떻게. 마코랑 대럭이는 매일 먹기만 하고. 그리고 노북이는 자꾸 피시방 가지마. 매일 피시방에서 돈 안내고 튀면 위험하단 말이야.”
소년이 소리를 빽 지르고 나니 아무도 대꾸가 없다. 오로지 노인만이 세상모르고 잠만 잘 뿐. 소년은 성이 나는지 한참을 씩씩거리다 다시 한마디 툭 던진다.
“이젠 변명도 안하는 거야?”
“아냐 똘아. 햄버거가 따뜻한 게 너무 너무 맛있어서. 미안해. 대럭이랑 같이 콜라랑 해서 사먹었어 미안해.”
“콜라에 얼음 넣어 먹은 지도 오래돼서.”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니까…….”
소년은 한숨을 내쉰다. 정말 땅이 꺼질 만큼 커다란 한숨.
“그럼 할 수 없지. 바둑판을 팔자. 저번에 골동품집 아저씨한테 슬쩍 물어보니 비싼 건 백만 원도 넘는데.”
바둑판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헛바람을 집어삼킨다.
고글을 쓴 여자. 마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 바둑판은 할아버지가 아끼는 건데…….”
똘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 바둑판은 거의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된 물건이다.
“어쩔 수 없잖아.”
똘이의 목소리도 작아진다. 어두운 분위기.
그때 방안으로 한 남자가 뛰어 들어온다. 매우 눈에 띄는 주걱턱의 남자. 그래서 별명이자 이름도 주걱이 이다.
“똘아 큰일 났어 이 동네에 퇴마사가 왔데!!”
누구 할 것 없이 놀라는 표정. 똘이만이 간신히 입을 때며 되묻는다.
“퇴마사? 이 동네에는 귀신도 없잖아.”
“다른 마을에서 건너온 몽달귀신이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다가 어젯밤 잡혔대. 우리 어쩌지?”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두운 표정.
“내가……. 내가 내일 나가서 알아볼게. 낮에는 나밖에 못 움직이니까.”
어색한 분위기가 도무지 걷히질 않는다. 그때 구세주와 같이 주걱이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커다란 봉지를 꺼내든다.
“아참 내가 순대 얻어왔어. 사장아줌마가 남은 거 다 싸줘서 엄청 많아. 헤헤헤”
똘이가 간신히 웃는다. 마코가 고글에 손을 댄다.
“내가 대울까?”
“아냐 되게 따뜻해.”
“그럼 할아버지 깨워서 먼저 드리고 먹자.”
“그래 그럼 우리 이거 먹고 자자. 내일 알아보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2. 충돌
다음날.
벌써 해가 서서히 지고 있는 이른 오후. 기원을 운영하는 골동품집 아저씨에게 바둑판을 이백만원에 판 똘이는 비록 돈은 은행에 입금했지만 두둑한 느낌과 이제 곧 떠나야 한다는 느낌사이에서 갈등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쭉 살아왔는데…….’
할아버지의 나이는 똘이의 상상을 초월하는 나이. 똘이도 최근 할아버지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밤에도 낮에도 잠을 자는 것이 그 증거.
그렇게 한참을 걷던 똘이는 문득 자신이 평소보다 더 많이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원에서 똘이의 집까지는 오 분이 체 걸리지 않지만 지금은 거의 십분 동안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귓가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의외로 알아차리는 게 늦는군.”
똘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핀다. 바닥에는 분필 같은 것으로 원이 그려져 있고 자신은 그 원을 따라 계속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왠 남자와 어린 꼬마가 자신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서있었고, 꼬마는 요상하다는 눈빛으로 똘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뿔위에 뿔이 난 도깨비를 본 적이…….”
남자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왜냐면 잔뜩 놀란 똘이가 있는 힘껏 정말로 있는 힘껏 누군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주걱아!!!”
단순히 큰 고함이 아니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물론이고 바람마저 일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남자는 귀를 막은 체 휘청거렸다.
“확성기였나? 신중함이 부족했군.”
남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자 아무 일도 아닌 듯 서있던 꼬마가 똘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잠시 대화 좀 하자는데 거참 비협조적인……!!”
꼬마역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굉장한 덩치의 주걱이가 그야말로 전심전력으로 어디선가 달려와 꼬마를 밀쳐버린 것이다. 황소에 들이받힌 듯 날아가는 것은 꼬마가 아니라 왠 핸드폰이었다. 예전 아주 예전에 사용되었던 벽돌크기만한 핸드폰.
주걱이는 그대로 똘이를 안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걱이는 등에 채찍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리곤 펑하는 소리와 함께 기다란 나무주걱만이 주걱이가 있던 자리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덩어리 하나가 똘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함소리가 뚝 그친다. 이는 어느새 품속에서 물병을 꺼내든 남자의 짓. 물병에서 나온 물이 똘이의 입을 입마개마냥 막은 것이다.
“팥죽 주걱이 도깨비화 된 것인가. 도깨비를 다시 물건화 시키다니 신기하군. 다행히 성수는 통하는…….”
남자는 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똘이는 물건화가 되지 않고 주저앉은 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성수는 특별한 물건이다. 사특한 것을 물리치는 효과가 탁월한데, 도깨비는 원귀나 마물이 아니어서 물건화가 되는데 그친다. 하지만 남자의 목적에는 매우 부합하는 물품.
똘이가 물건화 하지 않자 남자는 적지 않게 놀란 것이다. 이는 남자의 여동생이 사라졌을 때보다, 남자의 여동생이 원래 뭘 하던 사람인지 알았을 때보다 더 놀란 상황.
남자가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 물병속의 물이 끓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타난 마코가 선글라스를 벗고 물병을 바라보자 물병 속의 물이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한 것이다.
마코와 함께 나타난 대럭이가 손으로 똘이의 입을 훑는다. 물 덩어리가 얼면서 깨져 떨어져 나간다.
남자가 놀라고 마코가 나타나 물을 끓이고……. 그리고 뜨거운 물에 남자가 화상을 입으며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를 때까지 실제로는 1~2초의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어둑한 하늘 저쪽에서 안개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사방에 안개에 휩싸인다. 당연히 똘이 일행은 모습을 감추었다 아주 신속히 말이다.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져 안개가 쏟아지던 쪽을 묵묵히 바라본다. 어느새 다시 도깨비로 변한 꼬마는 낄낄거리며 웃는다.
“봐라. 까비 만나면 신중해도 소용없다니깐. 메밀묵이나 먹으러 가자.”
남자는 한참을 아쉽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긴다.
“낮도깨비 체면에 팥죽주걱에 한데 맞았다고 물건화라니. 그냥 낮자 때어버려.”
“그럼 낮에 일을 시키라고 낮에. 이 올빼미 같은 놈아!!”
남자는 오늘 처음으로 웃는다.
後1
어두운 밤하늘 속을 안개인지 구름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해치며 하늘을 난다. 정체불명의 것에 타고 똘이는 하늘을 난다. 똘이의 뒤편에는 낡고 낡은 전자레인지와 작은 냉장고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할아버지 어디로 가는 거야?”
똘이가 바닥을 두드리며 말을 건다. 바닥에서는 윙윙거리는 울림과 함께 대답이 들려온다.
“충청도 잔소리쟁이네 집으로 가려고”
“잔소리쟁이 아저씨는 크게 다치고 나서 캐나다로 이민 갔다며?”
“아아 그랬었지. 그럼 강원도로 가자. 강원도에 야메하는 녀석이 있는데 거기서 지내면 될 거야.”
똘이는 웃는다. 근래에 들어 가장 행복한 웃음이다.
“그럼 거기 도착하면 내가 이슬 사줄게.”
“아 글쎄 그 이슬은 못 먹어. 그보다 넌 술사면 안돼는 나이야.”
後2
남자는 편의점에서 파는 팥죽을 안주삼아 술잔에 술을 따른다. 그것을 보며 꼬마는 간장에 버무린 메밀묵을 입에 털어 넣고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 꼬마 도깨비는 정체가 뭘까.”
막걸리를 양껏 마시고는 입을 쓱 닦는다.
“누가 그 꼬마가 까비래. 게는 까비 아냐”
“…….”
“까비랑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뭐가 어때서. 예전에는 다 같이 살았구먼. 신경 끄고 우리 수육 먹자.”
남자는 한숨을 쉬며 되묻는다.
“팥죽 한 수저 먹으면”
꼬마가 작은 주먹을 흔들며 위협한다. 남자는 웃지는 않지만 편안한 표정이다.
이하 읽어도 되고 안읽어도 되는 부연 설명